Apr. 2022/ 조소의 즐거움에 대하여 / 홍기하 윤정의

조소의 즐거움에 대하여
윤정의, 홍기하
2022년 4월 2일, 11일



윤정의: 전시를 만들게 된 계기부터 말해보자. 먼저 내가 ‹조소의 즐거움›이라는 제목을 제시했는데, 이번 겨울에 두 달 정도 조그만 인체 조각을 만들기 위해 흙으로 조소를 하다 보니까 너무 재밌는 거야. 너도 조소가 재밌지 않을까 싶었고, 이런 즐거움을 다른 사람과 공유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 너는 어떻게 생각해? 깎고 붙이는 과정을 통해 조각을 만든다는 방법을 중심으로 두고 우리의 결과물을 제시하는 자리인데 이런 취지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해.

홍기하: 네가 ‹조소의 즐거움›이라는 전시 제목을 던져줬을 때 그거 자체로 우리 둘의 전시가 상상이 갔어. 굳이 그거에 대해서 더 구체적인 기획을 덧붙일 필요 없이 그냥 원래 하던 대로 하는 거를 보여주면 되겠구나 싶었어.

정의: 그러면 전시 얘기를 듣고 나서 전시를 위해 작업의 방향을 설정하거나 바꿔야겠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는 거지?

기하: 응. 원래 하던 것이지만 부담 없이 좀 더 러프하게, 내 기준에서 완성이라고 생각이 안 들지라도 전시해보자는 생각이 들었어.

정의: 아까도 말했지만 내가 작업을 할 때 느끼는 ‘즐거움’의 면모들을 공유할 수 있는 사람이 있으리라고 생각했고, 너도 분명히 그걸 느끼고 있을 거라 생각해서 너와 이 전시를 하면 좋겠다고 생각이 들었어.

기하: 나는 여태 전시를 기획할 때 내가 처음부터 끝까지 다 맡아서 했는데, 이번엔 너한테 많이 맡길 수 있어서 마음이 편하고 행복해.

정의: 나는 네가 전시를 같이 하자고 제안했을 때 뭔가를 좀 생각하고 있나 싶었는데 아무런 계획도 없고 그래서...

기하: 그렇지만 마음이 통하면 뭐든지 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나는 별로 걱정이 안 돼. 처음부터 끝까지 즐거운 마음으로만 하려고.

정의: 그러면 이번 전시에 낼 작업에 대해서 대략적으로 설명해줘.

기하: 작년에는 내가 광기에 휩싸여서 커다란 돌조각을 하겠다고 나댔는데, 이제 와서 지난 시간을 되돌아보니 내가 너무 내 분수와 맞지 않게 무리를 했나 싶었어. 그리고 돌은 야외에서 물과 땀을 사방에 튀기면서 와일드하게 작업해야 하는데, 그에 비해 석고는 실내에서 조용하게 작업하기 때문에 그런 고요한 시간이 그리웠어. 그래서 올해는 석고에만 집중하면서 작업실에 앉아서 좀 더 섬세하고 우아한 나만의 감각을 찾으려고 연구하고 있어.

정의: 정말 공감하는 게, 나도 작년에 작업실에서 하루 종일 조각을 만들고 그걸 옥상에 들고 올라가서 깎고, 다시 그걸 들고 내려오는 걸 반복하면서 몸이 너무 힘들었어. 그런데 그 후 몇 달간 앉아서 조그만 조각을 만드니까 신체적으로 지쳤던 게 사라지고 만들기가 재밌어진 것 같아. 만들기를 거리를 두고 보게 되기도 했고. 너도 같은 생각을 했구나.

기하: 맞아. 그리고 그런 작업의 물성과 환경에 따른 마음 상태가 내가 작업할 때 듣는 음악에서도 투영이 되는 것 같은 게, 돌을 깎을 때는 무조건 엄청 시끄럽고 샤우팅하는 펑크 음악을 많이 들었단 말이야. 공구 소리가 시끄럽기도 하고 육체적 에너지가 필요하니까.

정의: 그렇지. 나도 옥상에서 깎을 때 그라인더 소리에 귀가 찢어질 것 같아서 음량을 최대로 키워놓고 시끄러운 노래를 들었어.

기하: 요새 석고 작업하면서는 클래식도 많이 듣고 존 레논[1] 인터뷰 같은 것도 무한 반복으로 틀어놓고 들어. 내가 정말 세상에 있는 존 레논의 인터뷰를 다 찾아서 들었는데, 그런 과정에서 인생에 대한 근본적인 생각을 많이 하게 됐어. 그래서 작업도 전보다는 조금 더 성숙해졌다고 생각이 들어.

정의: 계절에 따라서 네 상태가 달라질 때는 없어? 나는 이상하게 겨울에는 몸이나 근육을 만들고 싶은데 여름에는 인체를 만들고 싶은 욕구가 줄어드는 것 같아.

기하: 왜?

정의: 글쎄, 이번 겨울이 되자마자 갑자기 몸을 엄청 만들고 싶더라고. 너는 작년에 큰 작업들은 여름쯤에 했는데 겨울이 되어서는 안으로 들어갔잖아.

기하: 그건 날이 따뜻할 때만 야외 작업이 가능하니까 그렇지. 근데 나는 겨울에 작업이 잘 되는 것 같아. 왜냐하면 날씨 좋을 때는 작업실에 별로 안 있고 싶고 돌아다니고 싶은데, 겨울에는 내가 추운 걸 싫어해서 밖에 잘 안 다니고 작업실에만 처박혀 있어. 그래서 작업이 잘되는 것 같아. 그리고 작업실이 춘천이라서 서울보다 더 춥고 눈이 와도 진짜 많이 오는데 그런 요소 때문에 뭔가 내가 강원도의 ‘고독한 예술가’가 된 기분에 더 그 이미지에 몰입하게 되는 것 같아. 권진규[2]가 된 기분이랄까? 권진규도 춘천에 살았잖아.

기하: 이 전시가 창작자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보여주려는 취지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 원래는 각자 자신의 작업에 대해 글을 쓸까 하다가 서로의 작업에 대해 궁금한 점을 물어보기로 했어. 너부터 얘기해봐.

정의: 먼저 네가 석고라는 재료에 처음 관심을 가지게 된 순간이 궁금해.

기하: 나는 항상 석고가 기초를 다지는데 좋은 재료라고 생각했어. 우리가 미술학원을 처음 가도 석고로 만들어진 입방체, 원형 뿔, 아니면 줄리앙 석고상 같은 걸 보면서 기본을 배우잖아. 그래서 석고를 보면 ‘미술 조형의 기초’라는 이미지도 있고, 또 나는 캐스팅하는 걸 엄청 싫어하는데 석고는 직조[3]를 하면 캐스팅도 안 해도 되고, 내가 깎을 수도 있고 붙일 수도 있다는 자유로움이 좋았어. 

정의: 맞아. 캐스팅은 내가 즉각적으로 반응할 수 없다는 게 아쉽지. 캐스팅 과정이 복잡하고 시간이 오래 걸려서 형태를 더 발전시키거나 할 수 없잖아. 캐스팅을 다 하고 나면 그 과정에서 떠올랐던 순간의 계획도 사라지고. 좀 더 즉각적으로 반응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하면 당연히 직조가 떠오르는 것 같아.

기하: 그리고 일반적인 캐스팅 과정에서는 내가 조각의 완성본의 형태를 생각하면서 거기를 계속 향해가며 수정하는 느낌인데, 그러면서 원형에서 표현했던 것을 잃게 되는 것도 많고, 캐스팅 가다[4]를 어디서 나눠야 될지 미리 계산을 해야 하고. 기껏 다 만들었는데 선배가 지나가면서 “야 이거는 절대 캐스팅 못 해”라고 하거나 “너 50가다 라고 들어봤어?”라고 하면 엄청 스트레스인 거지. 석고 직조는 그런 과정을 생략할 수 있어서 좋아. 깨지면 바로 쉽게 보수할 수도 있고. 그리고 난 내 작업이 막 몇십 년 지났을 때 어떻게 될지도 궁금해. 석고 색이 변하는 것도 엄청 멋스러운 것 같아. 작업할 때 만지는 석고 가루의 순백색의 아름다움도 있지.

정의: 나는 기억에 남는 게 예전에 주형 기법 수업을 듣는데 선생님이 석고를 섞는 방법을 가르쳐주면서 “여기 문교 석고에 쓰여 있는 혼수비가 있는데 그 혼수비대로 하면 석고가 굉장히 되직해지니까 그대로 하지 말고 물을 더 부어라”라고 알려주시는 거야. 그런데 왜 혼수비대로 하면 안 될까 하는 생각에 그대로 해봤더니 직조를 하기 적당한 상태가 나오는 거야. 또 그 전에는 에폭시 퍼티에다가 아크릴 물감을 섞어서 조색을 했는데 그런 과정을 거치고 나니까 당연히 석고도 조색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기하: 나는 예전에 마산에서 하는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참여했었는데 생전 처음 가보는 곳이어서 너무 할 게 없었어. 그런데 거기 옆에 문신미술관이 있길래 가봤는데 문신[5]이라는 사람이 석고 직조로 너무 아름다운 것들을 많이 만들어 놓은 거야. 석고 직조로 가능하다고 생각하지 못했던 표현을 다 해놨길래 석고가 이런 가능성까지 있는지를 알게 되었고, 그걸 문신이 어떻게 했는지 궁금해서 나름대로 연구를 해봤어. 그래서 혼자 여러 가지를 시도해봤는데 석고는 완전 폴리싱된 대리석처럼 매끈하게도 만들어볼 수 있고, 또 반대로 완전 거친 질감도 연출할 수 있는 너무 좋은 재료인 거야. 그리고 내가 건강도 안 좋았어서 건강한 재료를 생각하다 보니깐...

정의: 석고는 절대 건강한 재료라고 할 수 없지. 건강에 좋은 재료는 아니야.

기하: 그래도 조소과의 야만의 시대에 쓰던 폴리[6] 같은 화학 재료나 스티로폼 자르는 데 나오는 가스보다는 낫잖아. 그런 재료는 절대 안 쓰려고 했지.

정의: 자코메티[7]도 석고로 직조를 했고, 석고 직조를 했던 과거 조각가들은 많은데 어느 순간부터 왜 그런 것들을 자연스럽게 습득할 수 없게 되었을까?

기하: 그게 외국에서는 가르치는지 모르겠는데, 석고 직조를 옛날 조각가들은 거의 다 꼭 배웠다고 들었어. 그런데 그걸로 작업까지 하는 사람은 우리나라에는 문신이랑 최의순[8]밖에 없는 것 같아. 폴리가 등장하면서 석고를 대체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 석고를 많이들 잊게 된 건가?

정의: 예전에는 석고가 깎기가 되게 힘들다고 생각했었는데, 초경석고[9]를 써보고 나니까 A급 석고는 말랑말랑하다는 생각이 들어. 칼만 그냥 잘 쓰면 슥슥 깎이니까 직조하기 좋은 재료인 것 같아.

기하: 나도 여러 종류의 석고를 써봤는데 제조사마다 다 석고의 성질, 경화 속도, 경도, 색이 다른 게 신기했어. 

정의: 그러면 돌이나 석고 외에 흥미를 느끼는 다른 재료가 있어?

기하: 흙. 흙도 항상 뭔가를 캐스팅하기 위한 재료로만 쓰이잖아. 그런데 그냥 흙 자체를 말려서 전시하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 싶어. 석고 직조와 같은 맥락에서.

정의: 충분히 가능할 것 같아.

기하: 흙은 정말 모델링 하기에 좋은 재료잖아. 그런데 컨트롤하기 쉬울수록 오히려 더 어려운 재료란 말이야. 물성에 제약이 많을수록 더 다루기에 거침없을 수 있다고 해야 하나? 자유도가 높을수록 오히려 난 더 어려워서 흙은 나중에 석고를 내가 어느 정도 좀 안다고 생각했을 때 넘어가고 싶어.

정의: 그렇지. 흙으로 하면 뻔한 표현이나 질감이 나오는 게 쉬우니까 나도 작업을 하면서 그걸 많이 고민하게 돼. 이것에서 어떻게 재밌는 표현과 질감을 찾을 수 있을지.

기하: 흙으로는 사실 거의 다 표현이 가능하잖아. 그런데 특히 돌은 그게 더 안 되니까 어느 정도에서 타협 가능한 게 있단 말이야. 그런데 흙은 그게 아니잖아? 얼마든지 네가 하면 다 할 수가 있어. 그래서 더 들키기도 쉬워. 그런데 난 돌은 이제 별로 궁금한 게 없어. 작년에 내가 키가 2미터 넘는 큰 것도 해보고 싶어서 다 해봤더니 더 이상 궁금증이 없어졌어.

정의: 그러면 돌에는 흥미가 떨어진 거야?

기하: 흥미가 떨어졌다기보다 아직 내가 이걸 좀 더 소화할 기간이 필요해. 아직 이런 걸 할 깜냥이 안 됐는데 너무 까불었어. 그래서 돌은 나중으로 보류하고 이제는 석고를 좀 더 해야 할 때라는 생각이 들었지.

정의: 흙을 사용해보니까 이것도 수분량에 따라 나오는 표현도 달라서 수분량도 조절해야 하고, 그에 따라서 중력을 견디는 역학도 다르고, 미세하게 조정해야 할 것들이 많아서 쉬운 일은 아닌 것 같아. 또 직조를 하고 싶다면 석고뿐만 아니라 플라스틱 퍼티나 테라코타[10]도 있잖아. 예전에 직조를 해보려고 점토 조각 수업을 들었는데, 큰 덩어리를 구우려면 내부가 비워져서 흙의 두께가 1cm가 되어야 한대. 그 1cm를 맞추려고 노력해서 간신히 두상을 하나 만들었어. 그런데 1250도로 재벌을 구우니까 얼굴 한쪽이 푹 꺼져서 뒤틀려 나와서 충격을 받았어. 그때 흙을 가마에 굽는 것도 제한이 많은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어. 내가 직조할 수 있는 재료 중 석고가 제일 낫다는 결론이 났던 것 같아.

정의: 나는 지금 이 얘기를 하면서 내가 재료를 이해하고 표현할 수 있는 측면이 불과 2-3년 전의 나와 비교해서 엄청 넓어졌다고 느꼈어. 너는 어때?

기하: 나도 그런 것 같아. 전에는 ‘문신스럽게’ 석고를 사용해보는 것에 집중을 해서 석고를 반듯하고 이쁘게 갈아내는 연습을 했는데, 그거를 하고 나니까 이제 더 다양한 나만의 표현도 해볼 수 있겠다 싶어. 석고가 완전히 굳기 전에 컨트롤할 수 있는 방법들도 터득했고, 경화 정도에 따라서 사용할 수 있는 도구들도 파악해가면서 표현할 수 있는 텍스처도 더 넓어졌어. 그리고 요즘에는 석고에다가 색을 더하거나 다른 재료를 섞어서 형태를 만드는 것도 하는 중이야. 그런 연구의 결과가 이번에 전시할 것들이야.

정의: 석고 자체에 색을 섞으면 형태에 반응할 수 있는 방식과 범위가 훨씬 달라지지 않아? 석고의 색을 바꾸기 위해 석고 표면에 칠을 하는 건 몇 번 시도해 봤을 때는 별로라는 생각이 들었어. 너는 색을 섞으면서 형태를 만드는데 뭐가 달라진 것 같아?

기하: 나는 색을 쓰기 시작한 게 색이 없으면 내가 바르고 깎은 것들의 시차가 보이지 않아서 이게 한 덩어리를 깎은 건지 여러 겹을 쌓은 건지 알 수가 없어. 석고를 갤 때마다 색을 섞어서 바르니깐 그 시간들의 레이어가 보여서 재밌었어. 이걸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발전시켜 쓸지는 모르겠어. 그러니까 지금 내가 하는 작업들은 다 물음표가 달려있어. 그런데 색이 들어감으로써 작업에 ‘MZ스러움’이 생기는 것 같아서 그거를 좀 경계하고 있긴 해. 괜히 ‘인스타그래머블(Instagrammable)’한 게 되는 게 아닌가 싶은 것 있잖아.

정의: 그러면 ‘인스타그래머블’한 것에 대해 한마디하고 싶은 게 있어?

기하: 요즘의 조각들이 그 방향을 향해 가고 있으니까 나는 그 열차에 탑승하고 싶지 않은 거지. 그런데 너는 왜 이거에 대해 말을 안 덧붙이고 피씨한 척해? 너도 말해봐.

정의: 나는 되고 싶은 것과는 별개로 내 작업이 인스타그래머블하지 않은 게 약간 슬픈 것 같아.

기하: 너의 작업이? 왜?

정의: 왜냐하면 가끔 사진 찍으면 내가 보던 거랑 달라서 흠칫할 때가 있거든.

기하: 그런데 나는 확실히 잘 만든 조각은 사진에서 훨씬 뒤떨어져 보인다고 생각해. 사진은 정말 딱 그 한 면만을 보여주잖아, 조각은 360도로 관람을 해야 하는 건데. 눈 한 개로 감상하는 것과 눈 두 개로 감상하는 것의 엄청난 차이야. 그래서 사진이 별로라는 거는 반대로 조각이 좋다는 말 아닐까? 인스타그래머블한 것들은 반대로 실제로 보면 형편없거든. 예를 들어 인스타를 의식한 빵집들은 보면 딱 사진 찍기 좋은 구도들에서만 채도 높은 벽지에 화려한 데코레이팅과 디스플레이를 뽑아내고 실제로 가보면 빵은 다 푸석푸석하게 말라 있고 먼지 붙어 있고 지저분한 그런 거지. 전시장의 작업도 마찬가지야.

정의: 그러면 조각은 사진에 담기지 않는 뭔가가 더 있어야 한다?

기하: 당연하지. 조각을 만드는 건 우리의 실존을 다루는 것이라고 생각해. 물질 세계를 사랑하고 중요하다고 생각하니까 그런 걸 만드는 거잖아.

정의: 그러면 오히려 조각을 만드는 게 너무 쉬우면 그런 느낌이 안 올 것이다?

기하: 그렇다기보다는 그런 조각은 존재 이유 자체가 다르다고 생각해. 정말 물질 세계를 사랑해서 물질 세계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는 것보다 인스타 세계를 사랑해서 인스타 세계를 향해서 존재하는 것들이잖아.

정의: 나는 조각을 만들면서 사진의 시점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지 생각해보면 그건 아니지만, 그보다는 조각을 만드는 과정에서 물질과 관계 맺는 방식을 더 주된 변수로 만드는 게 훨씬 중요하다고 생각해. 조각을 보다 보면 작가가 그 형태를 만들면서 뭐에 집중했는지 보이잖아. 어떤 형태를 만들기 위해 재료를 아예 무시하는 경우도 있고, 혹은 재료가 주는  물성의 형태를 그저 따라가는 경우도 있고. 재료에 반응하며 형태를 만드는 것과 물질과 무관하게 형태를 만들어가는 과정이 엎치락뒤치락하는 게 재미있는데, 그냥 엎치락에서 끝이 나면 좀 재미없지.

기하: 너의 ‹머슬› 작업에서 흙으로 만든 뼈대 위에 석고를 바르는 프로세스는 어떻게 생기게 된 거야?

정의: 처음에는 아이소핑크를 뼈대로 이용해서 그 위에 석고를 붙였는데 거기에서 한계를 많이 느꼈어. 왜냐하면 아이소핑크에 붙인다는 건 결국 내가 아이소핑크의 형태를 따라가야 한다는 거잖아. 그 형태 위에 석고를 붙이는 와중에 다르게 바꿀 수 있는 가능성도 적어져서 뼈대를 어떻게 없앨 수 있을까를 많이 생각했어. 작년 초에 ‹모델› 작업을 제작하면서 그 방법에 대해서 어느 정도 생각을 했었는데, 그때 생각했던 이름은 ‘임시 지지체’야. 흙을 뼈대이자 몰드로 사용하게 되는 건데, 뼈대는 안에 있는 건데 몰드는 밖에 있는 것이니깐 그 둘이 동시에 기능한다는 게 재밌잖아. 흙으로 살짝 만든 다음에 거기에 석고를 올리면 그게 뼈대가 되었다가 석고가 굳으면 흙은 떼어버리면 되는 거고. 그러면 흙은 손으로 쉽게 만들 수 있는 몰드가 되는 거지.

기하: 그러면 흙이랑 석고랑 분리가 깔끔하게 되나? 나는 옛날에 캐스팅할 때 석고 몰드에서 흙 원형을 떼어낼 때 흙이 깔끔하게, 원형이 훼손되지 않고 떨어질 때 기분이 엄청 좋았어서 너의 작업에서도 그런 과정이 있지 않을까 상상했어.

정의: 그런 걸 생각할 틈은 없는 것 같아. 네가 말한 그 캐스팅 과정에서 흙이 잘 분리되었을 때의 쾌감은 조소과라면 다들 느낄 거야. 그런데 그건 기분은 좋긴 하지만 슬픈 일인 것 같아. 그게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 과정이면 고작 그게 잘 분리되는 게 기분이 좋겠어. 나는 그런 감정이 드는 것조차 싫고 그냥 쉽고 빠르게 만들고 없앨 수 있는 방법을 원했어.

기하: 그러면 만약에 네가 나중에 진짜 큰 조각, 예를 들어 높이 3미터의 조각을 만든다고 해도 그 안에 뼈대를 안 넣을 거야?

정의: 큰 조형물이 어떻게 서 있고 지지가 되는지는 잘 모르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당시 나에게는 뼈대를 어떻게 없앨 수 있을까가 중요했지만 지금은 뼈대와 덩어리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하는지가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어. 내가 흙으로 몰드를 만든 다음에 거기에다가 뼈대 같은 걸 안 넣는 건 아니고, 부러지지 않기 위해서 철사를 대거든. 그러면 철사가 있으니까 뼈대가 있는 거 아니냐고 할 수 있는데, 먼저 몰드를 만들고 그 위에다가 뼈대를 댄 거잖아. 뼈대를 만들고 형태가 따라가는 게 아니라, 형태가 있고 뼈대가 따라가는 것이니까 다른 거라고 생각해.

기하: 나도 조각의 정해진 형태를 생각하고 시작하는 게 아니기 때문에 뼈대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는데, 요즘에는 그냥 작업실에 굴러다니는 것들을 뼈대로 사용을 해서 그것을 출발점으로 삼아 상상하는 형태를 그 위에 붙이고 있어. 그래서 이 조각 안에 있는 뼈대가 뭔지를 힌트를 주는 게 좋을까 생각을 해봤는데, 그것도 아직 잘 모르겠어. 예를 들어서 내가 뼈대로 사용한 오브제에서 출발한 형태 중에 뼈대 자체를 많이 벗어난 형태를 표현하고 싶으면 이제 그 형태를 지지하기 위해서 그 뼈대 사이에 스티로폼이나 우레탄폼 같은 것을 사용하게 되는데, 그것을 솔직하게 보여주는 게 맞는지, 이것을 보여주지 않고 다 석고로 덮어버려서 마치 내부까지 석고인 척하는 것이 정직하지 못한 것인지, 그것에 대한 모종의 죄책감이 있는데 아직 해결하지 못했어.

정의: 그러면 지지할 수 있는 다른 사물을 옆에다 넣어서 연결하면 안 되나?

기하: 어떨 때는 내가 확실하게 딱 표현하고 싶은 형태들이 있거든. 그럴 때는 폼이 엄청 효과적이란 말이야.

정의: 그것도 정말 공감이 되는 게, 만약 공중으로 뻗어나가고 싶은 형태가 있어, 그걸 흙으로 만든다고 하면 다 무너질 테고, 차근차근 굳혀가며 쌓아서 만들 수는 있겠지만 정말 비효율적이잖아.

기하: 그렇지만 그걸 고민한다는 자체로 용서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이걸 우리가 이렇게 고민한다는 것만으로도 문신 선생님이 용서해 줄 거야.

정의: 다른 조각가들도 너처럼 공간으로 날개를 뻗치고 싶은 마음이 있을 거잖아. 원하는 형태로 공간에 어떤 아무런 제약이 없이 존재하고 싶을 텐데.

기하: 우리 선배가 했던 말 중에 재미있었던 게 ‘조각은 중력과의 싸움’이라고 했어.

정의: 맞아. 중력 또한 결국에는 물성의 일부인 것 같아. 

기하: 나는 그런 싸움이 있기 때문에 조각이 더 의미 있는 것 같아. 그 중력을 어떻게 이길 것인가, 아니면 이 중력의 영향 안에서 내가 어떻게 재미있는 형태를 만들 것인가를 고민하는 자체가 어떤 인간의 존재에 대해서 고민하는 거 아닐까. 

정의: 그렇지.

기하: 요즘에 막 VR 쓰고 만드는 가상 조각 있잖아.

정의: 알아. 너무 재밌어 보이던데. 그건 가소롭다는 거야?

기하: 가소로운 게 아니라, 그건 중력의 영향을 안 받아서 뭐든지 만들 수 있겠지만 그러면 재미없잖아. 아무리 기발한 형태를 만들어도 나는 인간이 중력과 싸워서 이겨낸 방법을 만든 걸 보는 게 더 재밌어.

정의: 그러면 VR 조각은 인간의 실존을 보여주지 못한다?

기하: 아니, 작업의 포커스 자체가 다른 거지. 너는 어떻게 생각하는데?

정의: VR로 그림 그리고 조각하는 영상을 봤는데 너무 해보고 싶었어. 진짜 재밌어 보이더라고. 내가 그걸 했을 때 어떻게 만들고 어떻게 반응하게 될지도 궁금해. 실제 흙을 만지는 것처럼 반응할지?

기하: 그런데 그거는 만들어도 디지털 환경에서만 볼 수 있는 거잖아. 그게 더 슬프지 않아? 그거를 출력하려면 또다시 중력과의 싸움을 고민을 해야 되는 거지. 나는 내가 아무리 VR로 재밌는 형태를 만들어도 그거를 현실 세계로 다시 가져올 수 없으면 재미없을 것 같아.

기하: 너의 작업에서 색은 어떤 역할을 하는지 물어보고 싶었어. 예를 들어서 그 ‹손›에서는 색을 어떤 기준으로 썼는지, 덩어리 채로 짜여서 올려진 유화 물감 같은 건 어떤 의도인지?

정의: ‹손› 작업을 만들 때를 얘기하자면, 조색한 석고를 쌓아 올려서 형태가 나오는 과정 중에 한 가지 톤으로 붓으로 석고를 얇게 발라. 그러면 전체적으로 공간이랑 딱 밀착이 된다고 생각해. 그전까지는 그 형태가 공간과 분리가 되어 있는 느낌인데, 그 위에다 다시 한 톤으로 바르면 밀착이 되는 거지. 거기다 또다시 다른 색의 석고를 올리면 어디는 합쳐지고 어디는 분리되는 그런 레이어들이 계속해서 요동치는 걸 상상하면서 색을 사용했어.

기하: 유화 물감 덩어리는 약간 ‘끼’? ‘기갈’?

정의: 기갈도 그렇고, 수동 공격적인 게 아니냐는 말도 들었어. 석고에 색을 섞는 순간 이제 형태와 색을 함께 봐야 하는 건데, 그러면 당연히 물감이 떠오르잖아. 석고에 안료를 섞은 걸 보완하기 위해 물감을 사용한 것처럼 보이면 수동 공격적으로 보일 수 있고. 어쩌면 그 말이 맞다는 생각도 들어. 동시에 물감도 당연히 색의 덩어리인데 왜 사용하지 않을까 하는 의문도 들었어. 작업실을 같이 쓰던 친구가 회화 작업을 하는데, 얘기를 하면서 작업도 보고, 물감을 살펴보는데 어느 순간 물감이 갑자기 해상도가 굉장히 높은 색깔의 덩어리로 보이는 거야. 당시에는 안료를 섞어서 어디까지의 채도와 어디까지의 명도를 만들 수 있는지 고민을 많이 하고 있는 차여서 한 번 써볼까? 라는 생각이 들었어. 

기하: 맞아. 물감 자체에 해상도가 있었는데 그걸 석고랑 섞어서 좀 뿌옇게 될 때 실망감이 들지. 완전 까맣게도 해보고 싶었는데 석고 가루가 하얘서 그게 잘 안되더라고.

정의: 이런 생각도 들어. 물감은 안료 더하기 바인더잖아. 석고도 물로 경화하는 일종의 바인더니까 안료랑 섞으면 석고도 물감이 되는 거지. 

기하: 다음 질문으로 넘어가서, 네가 인체 모델링을 할 때 본질적으로 포착하려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싶어. 그러니까 그 인간 자체에 대한 것인지, 아니면 그냥 철저히 인체의 형태와 조형에만 주목하는 것인지?

정의: 결국에 ‘사람을 왜 만드냐’는 질문인가? 사람을 만드는 이유는, 첫째는 사람이 만들기가 제일 어려워서. 사람은 왠지 잘 만들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이 있거든. 사람은 가만히 있지도 못하고. 또 형태도 제일 재미있고.

기하: 그러면 모델링하는 대상의 본질이나 그 인간 자체에 포커싱했다기보다는 조형적인 면에 포커스를 맞췄다고 볼 수 있겠네.

정의: 나는 사람을 보고 ‘이 사람의 본질이 뭘까?’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은 아닌 것 같아. 나도 그런 생각을 하고 싶은데 슬프게도 그런 생각은 안 들어. 조각을 만들면서는 조각이 대체 뭘까 같은 생각은 하지만. 그런데 예전에 사람 얼굴을 드로잉하면서 어떤 생각이 들었냐면, 주변 사람들이 한국인이니까 그리고 있으면 얼굴에 표현할 게 정말 없단 말이야. 막 아주 미세한 명암을 찾아내서 그리다 보면, 이게 이 사람을 표현하는 맞는 방법일까? 혹은 말마따나 본질적인 접근일까? 라는 의문이 드는 거야. 동양인 얼굴은 안와, 코 주변의 깊이 차이도 거의 없고 이마는 완만하잖아. 가끔 보면 광활한 대지 같은 느낌인데, 그러다 딱 서양인의 얼굴과 두상을 보면 명암과 구조로 접근하는 게 자연스러웠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 그에 비해 아시아인은 차라리 선으로 접근하는 게 맞나? 라는 생각도 들기도 했어.

기하: 그러면 다음 질문은, 네가 만든 청년 남성들을 보면 어느 정도 성적 대상화 되었다고 느끼는데 너도 그렇게 생각해?

정의: 처음 모델이라는 것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가 있어. 예전에는 모델이 거리감이 있는 대상이라고 생각을 했어. 그런데 학부 때 두상을 만드는 수업을 들었는데, 처음에는 두상을 만들기 너무 싫은 거야. 수업이 둘로 나뉘었는데, 한쪽은 모델을 보고 만드는 거고 다른 한쪽은 자유롭게 만드는 거였어. 처음에는 자유롭게 만드는 쪽으로 가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모델이 왔는데 잘생긴 거야. 얄쌍하고 차가운 인상이었는데, 그래서 곧바로 모델을 보고 만드는 쪽으로 붙었지. 그런데 어느 날, 모델이 왔는데 얼굴 온갖 군데에 피멍이 들어서 온 거야. 전날에 누구랑 싸웠나봐.

기하: 정말 귀엽다.

정의: 어. 그 사람이 거기에 그렇게 앉아 있는데 너무 흥분이 된다고 해야 되나? 너무 쾌감이 들더라고. 이 사람이 누구랑 싸울 정도로 성질이 있는 데도 불구하고 의무감에 의해, 혹은 일을 하려고 그 자리에 앉아서, 사람들의 눈에 보이려고 앉아 있다는 게 너무 재미있었어. 그때의 경험이 나중에 사람을 만들 때 영향을 미친 것 같아. 그리고 또 옛날 조각가들 보면 여자를 엄청 많이 만들었잖아. 사람을 만들면서 그런 조각을 보면 ‘하, 이 사람은 얼마나 여자를 사랑했으면 이렇게 많이 만들 수 있었을까?’라는 생각이 들더라고. 그거랑 비슷한 것 같아.

기하: 그렇기 때문에 네가 여자를 안 만드는 거구나.

정의: 그렇다고 여자를 ‘안 사랑한다’는 건 아니고... 그보다는 내가 조각에서 주로 보지 못했던 인체를 만드는 것에 대해 자주 생각해.

기하: 안 사랑한다는 게 아니라 그런 섹슈얼한 관심과 텐션이 있어야 확실히 훨씬 재밌어지는 거잖아. 그건 조각뿐만 아니라 그냥 인생의 재미도 그렇지만. 네가 만든 여자는 얼마나 객관적이고 건조하고 재미없을지 궁금하다.

정의: 맞아. 텐션이 중요한 것 같아. 그리고 예전에 여자 누드 모델을 해본 경험으로는 좀 다르게 접근하게 됐던 기억이 나. 또 무엇보다 건조하고 객관적으로 만들었노라 자부할 수 있어.

기하: 그러면 라이브 모델로는 해볼 생각 없어?

정의: 라이브 모델은 한두 번 시도해 봤는데 시간이 훨씬 많아야 가능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좀 더 막 다룰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고.

기하: 그래서 보통 조각가들이 다 자기 애인을 제일 많이 만들었잖아. 그냥 맨날 옆에 있으니깐 강제로 앉혀놓고서 그렇게 굴린 거 아니야. 너도 네 애인을 그렇게 시키면 되잖아?

정의: 내 애인은 그걸 절대 못 할 성격이라.

기하: 못하는 게 아니라, 그건 네가 그만큼 강압적이지 않아서 그래. 앉으라고 시키고 조금 움직이면 버럭 화내고. 다들 그렇게 하지 않았을까?

정의: 그것도 재미있을 수는 있을 것 같아. 막 억지로 가만히 있게 만들고.

기하: 그리고 약간 가스라이팅을 했겠지. ‘너는 나의 모델이 되는 게 영광이다’라는 식으로 멋진 예술가인 척했으니깐 그게 가능하지 않았을까? 너도 그렇게 해봐.

정의: 드로잉은 빨리빨리 할 수 있으니까 주변 사람들을 많이 드로잉했는데, 조각은 좀 어려운 것 같아. 드로잉은 모델에 좀 더 집중할 수 있는 반면 조각은 신경 써야 할 게 많으니까.

기하: 그런 데에서 너의 그런 애티튜드가 느껴지는 것 같아. 너는 강압적이지 않아서 그런게 아닐까? 옛날 사람들은 지네 마음대로 모델을 컨트롤했으니까 가능했는데 요즘에는 그러면 안 되잖아. 그러면 너는 요즘 사람의 조각인가?

정의: 요즘 사람이 모델을 보면서 조각을 만드는 방법에는 뭐가 있을까 생각이 드네.

기하: 그런데 요즘에는 그냥 컴퓨터상의 이미지들만 보면서 그리는 사람들도 많잖아. 네가 완전 그런 MZ 같은 건 아니면서도 또 모델을 비인간적으로 대하는 옛날 사람은 아니니깐 그 사이의 중간 지점에 있는 것 같아. 그런데 나는 네가 키링남 하나 데리고 다니면서 하면 훨씬 더 재밌을 것 같긴 해. 너의 성격상 또 그렇게는 못 할 것 같지만.

정의: 혹시 이 글을 읽는 사람 중에 저의 모델이 되고 싶은 분이 계시다면 제가 기쁘게... 로댕[11] 같은 사람은 어떻게 했을지 궁금하네.

기하: 아까 책 보다가 로댕이 모델이랑 있는 사진을 보고 웃겨서 찍어놨어. 모델을 완전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다 시켰을 것 같은 느낌이야.

정의: 또 생각나는 일화는, 언제 친구가 작업실에 놀러 와서 온종일 주구장창 드로잉을 한 적이 있어. 계속 드로잉을 하니까 굉장히 지겹고 피곤해 보였는데 무시하고 계속했거든? 마지막에 가서는 눈에 힘이 다 빠지고 머리를 계속 쓸어 넘기면서 너무 지친 표정이 됐는데, 그때 너무 재밌었어.

기하: 대작가라면 그럴 때 화내야지. “이게 지금 장난이야?” 이러면서.

정의: 모델링이 무슨 장난이니? 여하간 나는 모델을 그릴 때 뿐 아니라 조각을 만들면서도 나와 조각 사이에 텐션이 있어야 더 재밌는 것 같은데. 너도 조각을 만들 때 그런 텐션을 느껴?

기하: 응. 난 조각을 만드는 게 나의 종교 같다는 생각을 했어.

정의: 너의 종교?

기하: 응. 이걸 만듦으로써 계속해서 살아있다고 느끼고 내가 살아야 하고 존재하는 이유를 찾게 돼. 옛날부터 죽음에 대한 생각을 많이 했는데, 나는 아직도 죽음이 너무 무섭단 말이야? 죽음 뒤에 뭐가 있는지를 모르니깐. 아까도 존 레논 이야기를 잠깐 했지만, 존은 죽었지만 나는 그 사람의 인터뷰를 계속 듣고 있고 그 사람이 썼던 노래를 들으면서 내가 이 땅에 있기도 전에 존재했던 그 사람이 어떤 생각들을 가지고 있었는지 알 수 있고, 또 이런 얘기를 남들한테 하면서 전해주잖아. 그러면 난 존이 죽은 건 아니라고 생각을 해. 존이 정말 죽었다고 말할 수 있어? 그것처럼 내가 내 조각을 만들어서 다른 사람들한테 보여준다는 자체가 내 존재의 이유인 것 같아.

정의: 그것보다 만드는 순간의 텐션은 없어?

기하: 난 ‘텐션’이라기 보다 어떤 ‘영접’을 체험한다고 생각하는데, 만드는 순간에 문신도 존도 지금 나를 지켜보고 있다고 생각을 하면서 대화를 하거든. 그리고 이 사람들이 내가 어떤 형태를 만들면 이것에 대해 뭐라고 할지 다 얘기를 나눠. 그럴 때 엄청 살아있음을 느껴. 넌 그런 건 생각 안 해? 난 작업할 때는 대부분 혼자 있고 혼자서 하나부터 열부터 해결해야 되니깐 내 자아를 나눠서 혼자 비서 놀이도 하고 기사도 되고 선생님도 되는 역할 놀이를 한단 말이야. 작업을 하는 과정에서도 바로 옆에서 누가 의견을 줄 수 있는 게 아니니깐 혼자 상상을 하면서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을 일단 염두에 두고, 그 사람들의 의견을 계속해서 확인하면서 진행해.

정의: 그럴 때 그 결과물은 마음에 들어?

기하: 응. 난 내가 뭘 만들었을 때 ‘이건 좀 아니지’ 아니면 ‘이건 좀 선 넘었네’라고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이 말해주는 게 들려. 그런데 가끔은 그중에 누가 싫어할 것 같아도 내가 본능적으로 괜찮다고 판단이 되면 그냥 해. 어쨌든 나는 내 작품을 평가받았으면 하는 사람들이 딱 있고 그 사람들을 계속 생각하면서 하는 것 같아. 그리고 그 외의 사람들은 내가 하는 걸 좋아하든 싫어하든 상관이 없어.

정의: 그런 사람들은 누가 있어? 문신? 이사무 노구치[12]?

기하: 그건 다 말할 수 없지.

정의: 존 레논도 있는 건가?

기하: 당연하지. 나는 진짜 존이 내 안에 있다고 생각해. 문신이나 노구치 같은 사람은 사실 내 안에 있다고는 생각 안 되고 나를 지켜보면서 혼낼 것 같은데, 존은 나야.

정의: 그러면 적어도 네가 말해줄 수 있는 그 작가들이 너를 지켜보고 있다면, 그 상황에서 네가 떠올리는 건 뭐야? 그 사람들의 작업? 생전의 작업 태도? 

기하: 그냥 인생 전반적인 거지. 내가 누구의 작업을 좋아한다는 건 결국 그 ‘사람’을 좋아한다는 거 아닐까? 작업은 어쨌든 그걸 만든 그 사람이 어떤지를 보여주는 거잖아. 그 사람의 생각과 태도와 그 사람이 바라보는 세상의 모습. 그래서 나는 내가 누구의 작업을 재밌게 보면 그걸 만든 사람이 너무 궁금해. 그래서 사람을 찾아가는 것도 좋아하고 만나서 얘기해 보는 것도 좋아하는 것 같아. 진짜 멋있는 영화를 보면 이 감독은 얼마나 미친 새끼길래 이런 걸 만들었을까 궁금하고, 그 감독과 같이 일하거나 연애하는 상상도 하고. 넌 안 그래? 

정의: 네가 말해서 생각해 보니까 나는 작업을 본다 해도 이 작가의 성격이 어떤지, 그런 점을 딱히 궁금해한 적 없는 것 같아.

기하: 나는 좋은 작업을 보면 이 사람은 어떤 삶을 살고 어떤 생각들을 하길래 이런 걸 만들었을까 싶은데. 오히려 외국 작가면 환경이 나랑 다르니까 내가 생각하지 못한 것을 본 게 어쩌면 당연해서 덜 궁금한데, 한국 사람이면 더 궁금해져.

정의: 아. 나도 그런 걸 궁금해한 적이 몇 번 있긴 하다.

기하: 잘생긴 사람? 근데 확실히 잘생기면 더 궁금하긴 하지. 그거를 다 어떻게 떼놓고 볼 수가 있겠어. 다 총체적인 것을 구성하는 요소인 건데.

정의: 그렇지.

기하: 남자는 아까 말한 그런 섹슈얼 텐션으로서 궁금해지는 것도 있는데, 반면에 여자는 나랑 같은 여자니까 같은 편의 입장에서 더 궁금해지는 것도 있어. 나랑 비슷할수록 나랑 비슷한 환경에 있었는데 왜 이런 걸 했을까 싶은.

정의: 그러면 여성 조각가의 경우에 이입을 많이 해?

기하: 여성 조각가들이 특히 더 관심이 많이 가지. 그래서 한 명 한 명 만나보면 각자 다 너무 대단한 스토리들을 갖고 있어. 이 나라에서 사실 여성이라는 것을 의식하지 않은 채 조각을 할 수가 없거든. 그래서 얘기를 나눠보면 모두 ‘여성’이라는 것에 대한 사유가 깊고 그 개념과 사투해왔다는 것을 알 수가 있어. 그리고 비교적 남성들에 비해 자기객관화가 잘 되어있어.

정의: 네가 조각을 하면서 그런 것을 가장 의식하게 되는 순간은 언제야?

기하: 아무래도 체력적인 면. 그런데 나도 처음에는 남자랑 여자랑 체력적인 차이가 엄청 클 거라 생각했는데, 사실 우리가 무조건 몸으로만 작업하는 건 아니잖아. 그렇기 때문에 만약에 너와 내가 둘이서 같이 똑같은 작업을 10시간 한다면 우리도 체력적으로는 똑같이 힘들 거라고 봐. 그런데 차이는 환경적인 면에서 온다고 생각해. 남자들은 자연스럽게 남성 중심적인 네트워크에 소속되고 선후배 사이나 교수와 제자의 관계도 지네들끼리 잘 짜여져 있으니까 작업을 하면서 도움을 받고 정보를 요청할 때 수월해서 작업을 더 쉽게 할 수 있지.

정의: 체력 얘기가 나온 김에, 나는 작업을 하면서 신체적 한계가 느껴질 때 ‘팔이 3개였으면 좋겠다, 세 개의 팔로 하는 조각은 어떨까?’, 아니면 눈의 위치를 바꾼다든지 같은 생각을 하곤 하는데 너는 그런 생각은 해본 적 없어?

기하: 난 그것보다 오히려 걱정을 많이 해. ‘내가 이 돌에 깔리면 어떡하지?’ ‘내가 이걸 하다가 팔이 잘린다면? 팔이 잘렸을 때 조각은 어떻게 만들까?’ 너처럼 팔 3개를 생각하기보다 오히려 ‘팔이 하나일 때도 조각을 할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을 해.

정의: 네가 조각을 만들 때 드로잉이 없이 몸에 반응하는 형태를 만든다고 했는데, 너의 작업을 내가 만든다고 상상해봤을 때 드로잉이나 어떤 머릿속의 구체적인 상이 없이는 이런 형태가 나올 수 있을까 싶었단 말이야. 그래서 어느 정도까지 계획을 세우고 하는지, 그런 과정이 궁금해.

기하: 구체적으로 플랜을 세우지는 않는데 내 머릿속에 포스트 보드가 있는 것 같아. 예를 들어서 어떤 전시를 갔는데 너무 멋있는 게 있으면 그게 딱 머리에 박혀서 그 보드에 핀이 꽂히는 거지. 그리고 또 다른 거 보다가도 꼭 조각이 아니더라도 멋지거나 끔찍한 책을 읽거나 영화를 봤으면 그 개념이나 느낌에 핀을 또 꽂고. 그런 것들이 총집합돼서 형태가 도출되는 것 같아. 드로잉을 하긴 하는데 내가 만드는 조각에 대한 드로잉은 아니야.

정의: 영감을 얻기 위한 드로잉?

기하: 예를 들어 만들다가 어떤 형태로 만들고 싶은지 생각이 발전이 안 될 때 막 드로잉을 하다 보면 하고 싶은 게 생겨.

정의: 나는 드로잉을 할 때, 드로잉이 단순하게 조각으로 그대로 옮겨지지 않길 바라니까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이 뭐가 있을까 강구하는데, 너는 드로잉을 할 때 이게 조각에 그대로 옮겨져 버리는 것에 대한 걱정이나 두려움은 없어?

기하: 너한테 먼저 묻고 싶네. 너는 드로잉이 조각과 다르기 위해서 어떻게 하는데?

정의: 현재는 드로잉을 겹쳐서 그린다든지, 나중에 내가 그걸 들여다보면서 파악해서 머릿속에서 다시 구성을 해야 한다든지 하는 식으로 시도를 해보고 있어. 

기하: 나는 애초에 드로잉을 정확하게 조각으로 옮기려고 하지 않아. 드로잉 속 조형들은 일단 그 안의 뼈대나 중력의 영향을 별로 생각하지 않고 그리는데 실제로 만들다 보면 제작 과정에서 내가 원하는 대로 되지도 않고, 원래 즉흥적으로 형태들을 만들다 보니 원래 계획과는 많이 달라져.

정의: 가끔 조각가가 한 드로잉을 보면 ‘이건 조각가의 시점이다’ 라는 게 느껴질 때가 있단 말이야. 그러다 화가들의 드로잉을 보면 무게나 중력에 대한 고민이 없다는 느낌이 들기도 하고. 그런 면에서 나는 드로잉을 할 때 나도 모르게 중력이나 뼈대를 인식하는 게 느껴질 때가 있어. 너는 그게 철저하게 분리가 돼?

기하: 아니. 생각해보니 나도 어느 정도 있는 것 같아. 항상 뭔가 다리의 밸런스를 생각하면서...

정의: 맞아. 

기하: 슬프다.

정의: 진짜 슬프다. 그래서 나는 드로잉할 때 중력 같은 걸 가끔 무시해 보려고 할 때도 있어.

기하: 그러면 중력을 무시하고 한 드로잉은 실제로 조각으로 다시 옮길 때는 어떻게 돼?

정의: 그때는 다시 중력을 고려하면서 바뀌지 않을까?

기하: 그렇지만 시도 자체가 멋있네.

정의: 응. 그래도 그런 걸 시도해 보는 건 재밌는 것 같아.

기하: 한국 축구 같은 거네. ‘졌잘싸’. 졌지만 잘 싸웠다.

정의: 난 네가 이번 전시에 낼 부조 작업이 드로잉 같다고 생각했는데, 그 작업은 무슨 생각을 하면서 했어?

기하: 팔려고. 돈 벌려고. 나는 여태 작업을 하면서 작업의 판매를 아예 염두하지 않았었는데 요즘 서서히 먹고 사는 것에 대한 위기감이 들기 시작했거든. 이래서는 오래 못 가겠다 싶으면서. 지금 미술 시장도 핫한데 왜 나는 이걸 남의 이야기처럼 보고 있는 건지, 나도 내 조각을 팔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각성을 하게 됐단 말이야. 그래서 그런 시도로써 판매 가능한 작품을 만들어보려고 한 건데, 보통 조각을 판매한다고 생각하면 크기를 줄이잖아. 그런데 나는 작은 조각도 되게 판매하기 어렵다고 생각해. 조각은 점유 공간이 있기 때문에 그냥 그 조각만큼만 자리를 비운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그 주변의 공간까지 조각에게 내어주어야 하는데 그런 디스플레이는 한국의 주거 조건과 잘 맞지가 않잖아. 그래서 나는 무조건 벽에 걸 수 있는 걸 해야겠다 싶었어. 그래서 자연스럽게 부조를 생각하게 되었고 석고로 판을 만들어서 거기에다가 드로잉을 하듯이 막 형태들을 깎았어. 그런데 그게 어떻게 보면 내가 드로잉을 할 때 해결할 수 없었던 부분을 해결해주고 있는 것 같아.

정의: 어떤 면에서?

기하: 드로잉은 어디가 튀어나오고 들어가는지 그 양감을 정확하게 보여주기 어려울 수 있는데, 부조는 그런 걸 표현할 수 있고 석고의 다양한 텍스쳐도 직접적으로 보여줄 수 있어. 또 내가 이번에 크게 깨닫게 된 것은 ‘판매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가지고 작업을 한다는 것 자체가 제작의 즐거움에 엄청 큰 영향을 준다는 것이야. ‘이제 돈방석에 앉을 일만 남았어’라고 생각하며 흐뭇하게 작업을 하게 돼.

정의: 그럴 것 같아.

기하: 내가 돈 벌 궁리에 NFT도 조금 공부를 해봤거든? 근데 구경해보니깐 너무 끔찍한 거야. 인스타그래머블한 것보다 더 최악인 게 ‘NFT-able’한 거 같아. 너는 NFT 공부해 봤어?

정의: 아니, 안 해봤어. 그런데 내가 이해하기로는 NFT는 작품의 형상이랑 관련 있는 게 아니라 소유권에 관련된 거잖아. 네가 말하는 ‘NFT스럽다’는 게 그런 거야? 막 3D로, 시각적 효과 추구하는 거? 

기하: 응. 괜히 멀쩡히 있는 조각을 gif로 만들어서 막 움직이게 만들고 요란한 효과랑 사운드까지 넣는 거. 정말 끔찍해. 그런데 한편으로는 그런 것들이 더 많아져야 내가 하는 것의 중요성을 사람들이 더 잘 알게 되지 않을까 싶어.

정의: 네가 석조에 관심을 갖게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가 궁금해.

기하: 인간 실존에 대해서 관심이 있으면 최고 보스는 돌 아닌가.

정의: 철조에는 관심 없어?

기하: 나 겁이 많아서 철조는 전기를 써야 하는 게 무서워.

정의: 전동 그라인더가 돌아가는 게 더 무서운 거 아니야?

기하: 그라인더는 되게 단순하잖아. 그냥 날이 회전 운동만 하는 거기 때문에 내가 그것만 잘 컨트롤만 하면 되는데, 용접할 때는 기계도 잘 알아야 되고 여러 가지 전기 세팅도 해야 되는 게 무서워. 그리고 전기는 한 번 잘못 쓰면 죽음이잖아. 예전에 학부 때 작은 키네틱 작업해 본다고 전선 연결하다 스파크가 확 튀어서 다리에 화상 입었던 적이 있단 말이야. 그리고 나는 철의 느낌이 싫어. 형태를 내 마음대로 하기가 너무 힘들지 않아? 돌은 그래도 그라인더 쓰면 자유자재로 잘 깎여.

정의: 나는 철조 수업을 들었을 때, 선생님한테 “선생님, 금속조는 덩어리에서 깎아내는 사람이 없나요?”라고 물었더니 “철은 무게가 곧 돈이란다” 라고 하시는 거야. 그때는 ‘그렇구나. 맞는 말이네’ 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비단 철조뿐 아니라 조각의 모든 것이 무게가 곧 돈인 것 같아. 버리는 것도 돈, 사는 것도 돈.

기하: 그렇지. 그걸 나도 뼈저리게 느끼고 조각을 하는 게 맞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고 있어. 석고는 그래도 버릴 수라도 있지, 돌은 버리지도 못해. 전에 깎다 남은 돌조각을 버리려고 어떻게 폐기하는지 검색해봤는데, 인터넷으로는 정보가 안 나와. 그래서 동사무소에 가서 물어봤는데, ‘돌’을 버린다고 하니깐 처음 듣는 것처럼 엄청 당황하면서 다른 데로 전화 연결을 해주는 거야. 그래서 어디 업체에 연결돼서 거기에서 트럭에 돌을 싣고 갔는데, 내 생각에는 거기도 그냥 가져가서 강가나 산에다가 돌을 유기하는 게 아닐까 싶었어.

정의: 공짜였어?

기하: 아니? 돈 많이 들었지. 40만원. 깎고 남은 돌만 한 500kg이었어.

정의: 나도 전에 석고 폐기할 때 나온 게 500kg이라니까? 50kg짜리 10포대 이상을 버렸어.

기하: 그래도 나는 석고 버릴 때 마음이 후련해. 왜냐하면 작업실에 계속 내가 석고를 주문할 때 이게 그냥 온다고 해서 다 반가운 게 아니라, 작업실도 결국엔 언젠가 이사를 해야 하니깐 얘네들을 언젠가 나중에 또 이동시켜야 한다는 생각에 머리가 아프거든. 석고 포대 하나 옮길 때만 해도 되게 힘드니까. 그래서 ‘버린다’라는 홀가분함은 있어. 좀 슬프지?

정의: 또 궁금한 건, 첫 번째 개인전 ‹Vanilla› 때 조각에 대한 질문들을 던졌잖아. 지금 1년이 지났는데 스스로에게 좀 답이 됐는지, 그 이후에 바뀐 생각이 있는지?
기하: 엄청 많이 바뀌었어. 특히 여성적인 조각에 대해서는 일단 그 질문을 내가 계속 끌고 가면서 더 디벨롭을 시키려고 하고 있어.

정의: 그러면 지금 가장 집중하고 있는 질문은 여성적인 조각이라는 게 무엇인지에 대한 거야?

기하: 집중하고 있는 여러 부분들 중 하나지. 왜냐하면 나는 스스로 내가 여성적이지 않다고 생각을 하고 어느 정도 여성성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게 있었어. 그런데 어느 날 내가 만든 걸 보니까 너무 여성적이라는 생각이 드는 거야. 그런데 그 ‘여성성’이 정확히 뭔지 말로는 설명하기 어려웠어. 그래서 이게 과연 뭘까, 나의 이 여성성은 어디에서 기인한 것일까, 그리고 이것을 어떻게 더 잘 보여줄 수 있을까 고민하게 된 것 같아. 난 여성만의 감각이 분명히 있다고 생각해. 그것을 찾으려고 노력 중이야.

기하: 이 전시의 제목이 ‹조소의 즐거움›인 만큼, 조각을 만드는 데 가장 즐겁지 않았던 최악의 순간에 대해서 말해봐.

정의: 최악의 순간... 작년에 ‹사람 모양 재료› 전시에 출품할 작업을 만들 때 원래는 아이소핑크를 깎은 다음에 거기 위에다가 석고를 붙이는 게 아니라, 아이소핑크를 석고로 캐스팅하려고 했어. 그런데 캐스팅을 다 하고 나니까 너무 무거워서 들지 못했을 때. 그때 굉장히 좌절감이 컸어.

기하: 다른 사람이랑 같이 들면 되잖아?

정의: 그게 말이 안 돼. 생각은 해봤는데, 매일 옥상을 오르락내리락 해야 되는 상황이었는데 사람을 매일 부를 수도 없잖아. 그리고 얼마 전에 석고 폐기물 버리는 날에 현타가 심하게 왔었어. 너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버릴 때 항상 현타가 오나 보다. 물질이어서 재밌지만 물질이어서 현타가 온다.

기하: ‘No pain, no gain’ 인 거지 뭐.

정의: 그때 책임감을 좀 가져야겠다는 생각을 했어.

기하: 나도 돌 조각들 철수할 때 딱 그 마음이었다니까.

정의: 진짜 ‘무슨 생각으로 이거를 이렇게 다 허비를 했지? 왜 내가 아무 생각 없이 500kg를 여기다 쌓아놨지?’

기하: 나도. ‘무슨 생각으로 이런 몇 톤짜리 돌을 깎은 거지?’ 그런데 그런 건 있어. 당시엔 너무 짜증나는데 나중에 또 그리워. 뭔지 알아?

정의: 아니, 몰라.

기하: 몰라? 작업하면 너무 육체적으로 힘들잖아, 그런데 그걸 또 안 하면 하고 싶어지지 않아?

정의: 그렇지. 하고 싶지.

기하: 나도 돌 깎을 때는 너무 힘들어서 항상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는데, 운동할 때도 할 때는 힘들지만 하고 나서는 뿌듯하잖아.

정의: 난 운동을 안 해서... 그렇다면 반대로 너의 경우 조각을 하면서 가장 즐거웠던 순간은?

기하: 내가 좋아하는 작가가 내 작업을 보러 왔을 때가 제일 짜릿한 것 같아. 작업 좋다고 평소에 생각했던 사람이 내 전시를 보러 오면 정말 기뻐. 그 사람이 내 작업을 좋아하는지 안 좋아하는지는 모르지만, 그냥 왔다는 것 자체가 좋아. 나도 그 사람의 삶의 일부를 구성하게 되는 거잖아. 인간은 다 하나야.

정의: 그러면 이번 전시에 가장 왔으면 좋겠는 작가님, ‹조소의 즐거움› 전시에서 가장 뵙고 싶은 작가님 이름을 한번 말해줘.

기하: 이불.

정의: 이불 작가님. 진짜 좋겠다.

기하: 그런데 이불 작가님 전시 보셔?

정의: 그런데 이건 조각의 즐거움은 아니라 작업의 연장선상에 있는 즐거움이라고 볼 수 있잖아. 돌아가서 조각 제작할 때 가장 즐거웠던 순간은?

기하: 나는 돌 작업할 때 땡볕에서 개고생할 때. 작업하는 곳이 폐가 같은 데라서 제대로 앉아 있을 데도 없고 먹을 데도 없고 커피 한 잔 할 수가 없는 환경이라 아예 쉬는 시간이 없이 해. 그리고 집에서 차로 한 시간 거리이기 때문에 와 있는 시간 동안 최대한 뽑을 걸 뽑고 가야 한다는 생각에 최대치로 집중해서 해. 그렇게 막 땀 흘리며 개고생을 하고 온몸이 돌가루 범벅이 된 상태에서 집에 가서 샤워하고 위스키 한 잔 딱 마실 때가 제일 즐거워.

정의: 그것도 제작의 측면이 아니잖아. 집에서 술 마실 때가 제일 좋다는 거잖아.

기하: 아. 또 실패네. 이것도 있어. 내 돌 조각들이 지금 다 충주에 있는 부모님 댁 마당에 있어. 그런데 거기를 거의 안 가고 일 년에 두세 번 정도만 가는데, 언제 봄에 한번 갔는데 내 돌 조각 주변으로 꽃이 엄청 핀 거야. 그 위에 나비도 앉아있고. 잔디가 무성하고 새가 지저귀는 자연 속에 있는 내 돌들의 모습이 너무 아름다웠어. 조각을 만들 때는 항상 황량한 곳에서 했는데 얘네들이 이제 나와의 사투를 마치고 평온한 자연으로 돌아간 듯 보여서 너무 멋있었어. 황홀했어. ‘내가 이런 멋진 걸 만들었단 말이야?’ 하면서.


1. 존 레논: John Lennon, 1940-1980. 영국의 싱어송라이터, 평화운동가. 록밴드 비틀즈의 전 멤버이자 오노 요코의 전남편. 

2. 권진규: 權鎭圭, 1922-1973. 한국의 조각가. 대상의 외양보다는 본질과 정신을 표현하는 인체 구상 조각을 주로 제작했다. 

3. 직조: 直塑, Direct sculpting. 캐스팅의 과정을 거치지 않고 직접 재료를 붙이고 깎아 완성하는 조각의 제작법. 

4. 가다: 型(かた). 거푸집, 틀, 형틀.

5. 문신: 文信, 1923-1995. 한국의 화가, 조각가. 자연과 생명에 대한 관심을 바탕으로 대칭성을 지닌 기하학적 추상 조각을 제작했다. 

6. 폴리: 섬유강화플라스틱. FRP(Fiberglass-reinforced plastic). 

7. 자코메티: Alberto Giacometti, 1901-1966. 스위스 태생 프랑스 조각가. 인간의 실존을 탐구하는 인체 조각을 만들었다. 

8. 최의순: 1934-. 한국의 조각가. 전직 서울대 조소과 교수. 석고 직조를 이용해 추상 조각을 만든다. 

9. 초경석고: 超度石膏, Ultra hard gypsum. 경화 후 경도가 우수한 석고. 

10. 테라코타: Terracotta. 점토를 700-800도 가량의 온도에 초벌 구이해서 만든 토기류. 

11. 로댕: Auguste Rodin, 1840-1917. 프랑스의 조각가. 현대 조각의 개척자.

12. 이사무 노구치: Isamu Noguchi, 1904-1988. 미국의 조각가, 인테리어 디자이너, 조경사. 브랑쿠시의 제자로 돌과 나무를 이용한 추상 조각을 제작했다. 

Previous
Previous

July 2022/ 홍기하의 조각, 그 자체의 본성 / 이설희

Next
Next

Nov. 2021/ 돌 조각의 조건: 홍기하 작가를 만난 후 / 김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