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v. 2021/ 돌 조각의 조건: 홍기하 작가를 만난 후 / 김솔지

김포시 대곶면 작업장에서 홍기하 작가가 작업하고 있는 대리석 조각 (촬영: 김솔지)

돌 조각의 조건 : 홍기하 작가를 만난 후

김솔지

김포시 대곶면, 홍기하 작가가 작업하는 장소를 찾아갔다.(1) 평소 가보던 도시 ‘김포’보다는 ‘강화’에 가까운 곳이었다. 좁은 길 하나로 컨테이너를 실은 덤프트럭이 지나갔다. 그 길을 따라 가다 보니, 폐가가 보였고 마당에 커다란 옅은 코랄 빛의 돌 조각이 있었다. 이 마당에서 조각 작업을 하는 홍기하 작가를 만났다. 작가는 등받이가 없는 작업용 플라스틱 의자에, 나는 오래되 짐이 이리저리 방치된 나무 벤치에 엉덩이를 살짝 걸쳤다.

작가의 첫 질문은 올해 만든 돌 조각 세 점으로 전시를 할지, 말지 였다. 신진 조각가가 돌 조각을 전시하는 일에는 몇 가지 물적 토대가 필수적으로 요구된다. 지게차와 운송이라는 ‘작품 운송’ 토대가 하나이며, 조각을 든 지게차가 들어갈 수 있는 입구와 돌 조각들의 무게를 견딜 수 있는 하중이 뒷받침된 ‘전시 공간’이 두 번째 조건이다. 세 번째는 공통조건이다. 저렴한 대관비와 지리적 접근성. 작가는 특히 지게차 진입 때문에 모든 요건을 충족하는 ‘국립현대미술관’이 아닌 어느 곳에서 돌 조각 전시가 가능할지 궁금해 하며, 빈 터에서 작품을 전시할지 고민하고 있다고 했다.

극서기와 극한기를 피해 야외에서 작업하는 ‘크고 무거운 조각’은(2) 봄, 초여름, 가을 이렇게 세 계절 동안 세 개의 작업으로 나왔다. 그는 농사를 마무리 짓듯이, 화강암 돌 조각에 이어서 현재 하는 대리석 돌 조각 작업의 후반 작업을 하고 있다고 했다. 이 조각들의 전시 공간을 찾는 일, 작업을 마무리한 작가가 해야 할 다음 작업이다. 나는 ‘여기가 전시의 ‘적소’에요.’ 라고 말하지는 못했다. 이 작업장의 형태와 유사하게 야외 공간과 전시 공간이 연결된 공공기관 두 곳을 말했다.

한 시간 넘게 이야기를 하니, 늦가을 바람에 몸이 점점 차가워졌다. 우리는 패딩 하나 걸치지 않고 따뜻한 차 한 잔 마시지 않고 그냥 돌 조각을 바라보며, 돌가루와 새소리가 섞인 교외에 앉아있었다. 나는 편한 의자 하나 커피포트 하나 없는 작가의 작업장이 신기했다. 작업하다 잠시라도 편하게 쉬지는 않는 것인지 물었다. 작가는 여기서는 오로지 작업만 한다고 했다. 쉬는 시간까지 줄여서 압축적으로 작업에 온 시간과 에너지를 할애하고, 차를 타고 서울에 있는 자신의 집으로 가는 것이다. 운전을 못 하던 그가 운전을 배워, 소위 중소기업들의 동네에서 작업만 하는 일. 이는 작가가 가진 토대에서 조각하기 위한 균형이다. 돌 조각을 하기 위한 작업장의 조건, 야외 공간이 있어야 하며, 주변 소음 민원이 없어야 하고, 가루 분사로 직접적으로 피해 받는 사람이 주변에 없고, 지게차가 들어와 작품을 실을 수 있어야 한다. 저렴한 비용에 이 조건을 충족시키려면, 다른 조건들, 이를테면 바람을 피할 공간, 컴퓨터를 올려놓고 잠시 사무 작업을 할 책상, 깨끗한 화장실, 휴게 공간이나 싱크대는 부수적인 것이 되고 만다.

조각을 전공한 작가는 왜 하필 ‘돌’ 조각을 하는 것일까? 돌 조각의 ‘조건’은 작가 입장에서는 ‘한계’일 수 있다. 작가가 돌 조각을 하기로 한 일, 여러 종류의 돌을 가지고 돌 조각을 하는 것, 돌 조각을 가지고 전시를 고민하는 일, 의뢰 받아 돌 조각을 해서 건물 앞에 세워두는 일과 관계없이 그저 돌 조각을 하는 일, 이 자체가 돌 조각가로서 자신을 명명하고 돌 조각을 하는 ‘돌 조각’ 작업이다. 15세기 르네상스 시대 미켈란젤로가 대리석 조각 <피에타>를 만든 것은 프랑스 추기경 장 빌레르(Jean Bilhères de Lagraulas)의 커미션이 있었고,(3) 로댕이 미완의 <지옥의 문>을 시작한 것도 문화부 차관 투르케(Edmond Turquet)의 주문이 있었다.(4) 홍기하 작가가 가장 좋아하는 조각가 브랑쿠시(Constantin Brâncuși)는 어떠한가? 로댕의 제자였던 브랑쿠시는 비콩트 드 노아이유(Vicomte de Noailles)로부터 그의 <공간 속의 새> 확대 버전을 주문 받아 제작했으며, 자신의 조각을 변형하며 제작하는 ‘예술 산업적’ 방식을 보여주었다.(5) 이처럼 무겁기 때문에 운반과 제작, 전시, 보존이 모두 녹록지 않은 돌 조각은 자본주의 시대에는 더욱 더 ‘자본’과 밀접한 관계에 있다. 사회적으로 보통 돌 조각가는 빌딩 앞 조각을 의뢰받거나 용역을 수행하는 조형물 제작자의 위치에 있는 경우가 많다. 거대하고 무거운 돌 조각 작업은 ‘의뢰’라는 교환관계가 약속될 때에나 수월한 것이다.

그러나 홍기하는 지금은 어떠한 주문과 의도도 없이 작업하고 있다. 올해 마포문화재단의 <업사이클>에 선정되어 받은 지원금보다 돌 하나 값이 더 나간다. 그는 자본주의라는 사회 질서를 정면으로 마주하며 돌 조각을 하고 있다. 사회적 질서가 그의 뒤에서 그를 조종한다면, 그가 바라보는 곳은 돌이다. 그의 조각은 자신이 작업하는 시간 동안 돌을 마주 보는 일, 대화하는 일, 관계 맺는 일이다. 그는 돌과 친해진다고 말한다. 그 과정에서 나온 돌 작업은 감상자와 적은 말로도 이해할 수 있는 관계 맺기를 지향하는 듯하다. 최근 기획전 《Peer to Peer》(기획 고안철)에서 본 홍기하의 석고 조각 <Flesh>에서도 나는 어떤 서사나 메시지보다, 91cm 높이의 얇은 석고 조각에서 그저 날렵한 에너지, 조명을 맞을 때 한층 더 기세등등한 표현과 이를 담지한 내용을 느꼈던 것처럼 말이다.

화강암이나 사암, 대리석 등 홍기하가 지금껏 선택한 돌은 작가 자신이 선택한 ‘재료’이다. 재료가 되기 전에는, 인간이 어디선가 채석해 상품으로 파는 지구의 ‘자원’이다. 그 이전에는 유구한 세월이 쌓여 ‘덩어리’가 된 지층의 일부다. 그는 이 물질과 한정된 시간 동안 관계를 맺는다. 돌보다 더 짧은 생을 살기 마련인 인간으로서 유구한 자연사적 물질과 관계 맺는 그의 작업은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그 자체로 보여주는 듯하다. 한편으로 홍기하는 수억 만 년의 역사를 정으로 내리치고, 그라인더라는 기계장치로 도려내는 인간의 모습을 보여준다. 다른 한편으로 오랜 자연의 파편 앞에 선 또 하나의 자연으로서 일대일로 나눈 무언의 대화를 기록한다.

홍기하가 조각가로서 돌 조각을 계속할 수 있을지는 그가 조각하는 조건이 지속되는지와 유사하다. 지금 사용하는 그의 임시 작업장이 허물어지면, 그의 조각 작업은 어떤 변화를 겪게 될까? 그는 예술로서 돌 조각을 일로써 돌 조각과 계속 분리할까? 그는 앞으로 어떤 재료와 관계 맺을까? 나는 현실적 조건이라는 돌풍에도, 언제나 돌처럼 자신의 중심을 지니고 있는 그가 새겨나가는 조각을 지켜보고자 한다. 그의 조각이 전달하는 것들을 가지고 대화를 이어나갈 수 있을 것이다.


(1) 2021년 11월 15일 진행된 홍기하 작가와의 대화를 정리한 이 글은 마포문화재단 지역문화팀의 <업사이클> 사업의 일환으로 작성되었다.

(2) 홍기하 작가의 표현을 따랐다.

(3) 포드햄대학교 미술사 교육 웹사이트 ‘미켈란젤로’의 <피에타>의 역사 항목 참고. (검색 2021년 11월 17일) https://michelangelo.ace.fordham.edu/exhibits/show/vatican-pieta/vatican-pieta-history

(4) <르몽드> 프랑스판 2012년 1월 2일 기사 <Rodin nous ouvre « la Porte de l’Enfer »>참고. (검색 2021년 11월 17일) https://www.lemonde.fr/arts/article/2017/01/02/rodin-nous-ouvre-la-porte-de-l-enfer_5056336_1655012.html

(5) Hal Foster ... [et Al.], Art since 1900 : Modernism, Antimodernism, Postmodernism, (New York: Thames & Hudson, 2011), p. 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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